스토리테크 전쟁의 일부
영어 '스토리(Story)'의 어원이 재미 있는데, '벽에 써놓은 이야기'라는 라틴어 '스토레이 (Storey)'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인은 국가의 중대 소식을 벽에 써 놓았고, 중세 유럽인도 건물 층마다 또는 마룻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전설을 새겨 놓았다. '스토리'가 건물의 '층'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이유다.
우리는 '호모 나렌스(이야기하는 인간)'다. 많은 언어학자, 사회과학자, 작가, 비평가, 철학자가 주장한 것처럼 스토리 텔링은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특성이다. 인간은 글, 영상, 음악, 미술 등 각종 스토리 텔링 수단을 이용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대화형 인공지능 쳇GPT의 할루시네이션을 두고 "원래 인간이 '할루시네이션하는 종족'"이라고 논평하며 쳇GPT를 옹호하는 사람도 재법 많다.
인간은 다른 이의 스토리를 잘 듣기도 한다. 굳이 이야기를 들으려는 호모 나렌스의 특징을 두고 스웨덴 작각 헨닝 망켈은 "다른 가람의 꿈, 두려움, 기쁨, 슬픔, 욕망, 패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우리가 동물과 다른 점"이라고 했다.'
문제는 오늘날 스토리가 '수도꼭지'에서 수돗물이 나오듯'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만 홍수인 시대가 아니다. 사건, 인물, 대화, 행동 등을 연결해 구조화한 메시지인 스토리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스토리 생산자로서도, 스토리 소비자로서도 나는 매일매일 '만인에 대한 만인의 스토리 투쟁' 현장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만든 스토리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오늘 새롭게 발간된 스토리 중 나는 어떤 것을 골라 읽고 봐야 할까?
현대 스토리 비즈니스 환경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복잡하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파라마운트 글로벌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헐리우드 스튜디오, K-드라마의 빌나는 역사를 써온 CJ ENM과 스튜디오 드래곤 등을 넘어 인산 수십조 원씩 드라마 제작에 쏟아붓는 넷플릭스, 시간당 수만 시간 분량의 새 영상이 올라오는 유튜브와 숏폼으로 다른 소셜 미디어 서비스들을 '올킬' 중인 틱톡 등이 국경을 넘나들며 맹활약 중이다.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 리디는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디지털 스토리 텔링 시장을 창출했고, 이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제 끝이 아니다. 물건을 팔고 배달해주는 아마존과 쿠팡, 스마트폰과 TV를 만드는 애플과 삼성전자, LG전자, 로쿠 등 제조 기업까지 스터리 비즈니스에 뛰어든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