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예찬
광대놀이 한마당. 50명의 배우들과 40명의 스태프들이 함께한 대형 공연이었다.
연극의 해를 마감하는 전 연극인 합동 공연임과 동시에 MBC 창사 30주년 기념 공연이기도 했다. 게다가 평소 존경하던 이강백 선생과의 첫작업이었다. 데뷔한지 5년된 30대 초반의 신출내기 연출자에게는 실로 가슴 벅찬 영광의 무대였다.
고성봉, 백성희, 김길호, 손숙, 한명구, 정은표 등 연극계 원로부터 갓 데뷔한 신인들까지 함께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극단이 참여하고 한국연극협회가 제작한 이른바 대동적 성격의 축제 연극이었다.
작각 이강백 선생을 만났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이 광대놀이를 이중구조 양상으로 각색해 줄 것을 요구했다. 살모 설화를 모티브로 죽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삼형제의 인생 이야기가 씨줄이라면 배우의 여정을 살아가는 등장 배우들의 모놀로그를 날줄로 삼아서 말이다. 과거의 설화와 현재 배우들의 독백이 교차하고 고전과 현대 의상이 교차하고 회전무대와 스포트라이트가 교차하는, 이분법적 구성이 음악적으로 매끄럽게 연결되었다.
설화 속의 연기는 일상적인 리얼리티를 배제하고 양식화, 단순화했다. 가면을 고려한 커다란 동작과 정면 대사가 기본 특징이었고, 등퇴장을 암전 없이 오버랩시키며 연극의 놀이성을 강화했다. 회전무대는 연극에서 다루는 인간의 운명과 윤회 이미지를 살리는 도구로서 또한 세트의 입체감과 조형미를 살리는 데 일조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연주단 전원이 무대 위에 상주해 있고, 각 장면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광대패 여섯명이 일인다역을 수행함으로써 극 전체가 하나의 '광대놀이'가 되었다. 이 모든 장치는 오늘날 광대의 역할과 의미라는 작품의 주제에 부합했으며 연극의 해를 마감하는 전 연극인 합동 공연이라는 축제적 성격의 의미를 한층 복돋아주었다.
그때 연극을 왜 하는지 나 자신에게도 물었다. 인터뷰를 할 때나 주변에서 느닷없이 연극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아직도 난감해진다. 더듬더듬 왜 할까 생각해 가며 하는 대답은 언제나 헛소리다. 연극을 하면서 한번도 연극을 왜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첫눈에 반하는 연애를 해본 적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 하나만이 연애, 그런 연애에는 조건이 없다. 이유도 필요하지 않다. 열정적으로 시작이 어딘지 가늠치 못하고 무조건 달려가는 연애처럼 나는 사춘기 때 무대를 만났다. 그리고, 40년이 훌쩍 지난 오늘까지 몸이 달아오르고 숨이 가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곳은 객석이다. 연습장이다.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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