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Poor Things)'은 올해 관람한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 미술상, 분장상, 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는데 그 영예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여우주연상을 받은 엠마 스톤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현재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젊은 여배우 중에서도 단연 '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파격적인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젊은 여배우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가여운 것들'은 한마디로 '여성 프랑켄슈타인의 세상 성장기'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의 몸에 태아의 뇌를 가진 여성이 성에 눈뜨고, 세상을 모험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본 분들은 여성의 해방을 다룬 페미니즘적 시각의 작품으로 보기도 합니다. 남성들이 여성을 소유하고 억압하려 하는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목이 '가여운 것 (Poor Things)'인 이유가 궁금해졌고, 제 나름대로 추론해보았습니다.
주요 남성 캐릭터는 벨라(주인공)를 창조한 갓윈 벡스터, 벨라와 약혼한 어리버리한 조수 맥스 맥캔들리스, 벨라의 육체를 눈뜨게 한 덩칸 웨더번, 원래 남편 블래싱턴 경 등 총 4명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남성은 거의 없습니다. 갓윈 벡스터는 프랑켄슈타인으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학대받고 남근까지 잃은 인물입니다. 맥스 맥캔들리스는 약혼녀 벨라를 좋아하지만 위기상황에서는 환경에 순응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입니다. 덩칸 웨더번은 섹스와 육체적 관계만 탐하는 허세가득한 속물입니다. 전 남편 블래싱턴 경은 폭력 그 자체입니다. 이 네 사람을 합치면 그냥 '남자'입니다. 영화를 보며 저 자신의 괴물 같은 면모, 우유부단함, 속물근성, 폭력성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가여운 것들(Poor Things)'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영화에서 진정 '가여운 것들(Poor Things)'은 '남성'입니다.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고 성기만 탐하며 발전은 커녕 세상을 지배하는 착각을 하는 남성들 말입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그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가여운 것들인가?"
벨라는 성에 눈뜨면서 덩칸 웨더반을 시작으로 다양한 남성과 섹스를 합니다. 그러는 동안 벨라는 자기주도적 여성으로 성장하지만 남성들은 전혀 성장하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가여운 것들인가?"
약간의 성장 가능성을 보이는 유일한 남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남근이 없는 갓윈 벡스터입니다. 그는 벨라에게 새 생명을 주었고, 모험을 떠나게 해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었습니다. 벨라에 대한 창조주이자 아버지 같은 사랑만이 성장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여운 것들(Poor Things)'은 최근 제가 관람한 여성 성장 서사 영화 중 최고작품입니다. 미술, 연기, 음악, 주제의식, 카메라 활용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습니다. 끝으로, 이 영화가 좋았다면 엔딩 크레딧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예술입니다.
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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